원화가 이야기 - 코이케 사다지
아보가도 파워즈 출신인 여성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site. twitter.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코이케 사다지(小池定路)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에로게 제작사 아보가도 파워즈(이하 아보파)에서 근무했습니다. 원화 데뷔작이 1999년 4월에 발매된 종말을 보내는 방법이고, 마지막 작품이 2003년에 발매된 엠 MxS 에스이니 대부분의 작품 활동을 이 회사와 한 셈이지요. (2003년 12월에 발매된 라이어 대전 쟌마게돈에서 일부 캐릭터 원화를 맡긴 했지만 게스트 수준이었고 1999년 말과 2001년 말에 각각 발매된 포크송, 대전마작 넷으로 론!은 회사가 너무 어려워 게임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외주를 뛴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프리로 일하다가 2006년에 게임쪽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공업용 로봇 제작사에 들어가 엔터테인먼트 파트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인물 작업은 하지 않고 간간히 만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원화가를 소개하기에 앞서 코이케 사다지와 인연이 깊은 아보파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규모가 작은 제작사 중 STUDIO B-ROOM과 함께 가장 좋아했던 회사였는데 2005년 6월 사장의 병사로 활동을 정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995년 10월에 설립된 아보파는 삿포로시에 위치해 있으며 프로그래머이자 대표이사인 우라 카즈오를 중심으로 오오츠키 료우키(시나리오), 코이케 사다지(원화), 요시자와 토모아키(원화) 등 쟁쟁한 실력의 스텝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규모도 작고 발매한 게임 수도 많지 않지만 내놓는 작품 수준이 웬만한 메이저급 이상이라 신작을 항상 기대했던 제작사였죠. 오컬트 소재를 제대로 살린 탐정물 흑의 단장과 Es의 방정식, 잔잔한 감동을 주는 비주얼 노벨 종말을 보내는 방법, 에로게 RPG 중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수작 D+VINE[LUV], 소프트와 하드의 극을 달렸던 SM물 엠 MxS 에스, PIGEON BLOOD 등 작품 목록을 보면 정말 버릴 게임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작품 퀄리티에 비해 회사 운영이 순탄치 않았다는 점. 항상 돈에 쪼들려 개발비 조달을 위해 주요 스텝들이 다른 회사 게임 제작 외주를 뛰기도 했고 사장 월급 차압이나 보험 해지 등 눈물나는 방법으로 개발금을 충당하기도 했습니다. D+VINE[LUV]의 성공으로 좀 살만하니 수도관 파열로 회사가 침수돼 개발 데이터를 다 날리지 않나, 횡령 사건에 연루돼 대표가 법정에 서는 등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회사였습니다. 특히 자금난이 심했을 때 사장이 파칭코로 돈을 벌어 직원 월급을 주었다는 사연이 신문에 보도되어 많은 에로게이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고 하네요. 이 눈물나는 회사 운영기는 우라 카즈오의 갑작스런 병사로 인해 2005년 중반에 막을 내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안타까운 제작사입니다.
아보파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다시 원화가로 돌아가 봅시다. 코이케 사다지는 담당한 작품이 많지 않지만 여성 특유의 섬세한 펜선이 잘 살아있는 원화가입니다. 캔버스에 스케치하듯 그리는 러프 이미지풍의 원화는 게임이라기 보다는 일러스트집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흑백톤에 가까운 색감 역시 작가의 화풍과 잘 어울려 게임의 세련미를 더합니다. 화집을 하나 내줬으면 좋겠는데 종말을 보내는 방법 오피셜 아트워크 사건(출판사가 저작권료를 떼먹고 날랐음) 때문에 책도 잘 안내는 것 같더군요. 여러모로 운이 없었던 원화가.
이제 코이케 사다지가 담당했던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인장의 관심 분야 중 하나인 게임에 한정했으며 링크가 있는 타이틀을 클릭하면 작품에 대한 추가 정보나 감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제목만 있는 타이틀은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종말을 보내는 방법
1999년 4월 6일에 발매된 종말을 보내는 방법(終末の過ごし方 ~The world is drawing to an W/end~)은 코이케 사다지의 에로게 원화 데뷔작이자 아보파의 첫 비주얼 노벨입니다. 세계 멸망을 일주일 남겨둔 한적한 폐교, 수도도 전기도 끊긴 이 곳에서 종말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일상을 다룬 순애물로 게임 설정과는 도무지 맞지 않을 것 같은 잔잔한 스토리와 원화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수작입니다. 종말의 목전에 어울리는 것은 무질서와 광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 멋진 작품.
포크송
1999년 11월 26일에 REWNOSS에서 발매한 포크송(フォークソング)은 분위기가 종말을 보내는 방법과 비슷하지만 세계 멸망과 심각한 소재는 아닙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이제 막 사춘기를 겪고 있는 세 커플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식 비주얼 노벨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원화가의 화풍과 게임 분위기가 잘 맞는 작품입니다. 원화를 제외하고 개발 스텝이 달라 아보파 수준의 파워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시점을 달리하는 세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잘 구성되어 있어 아기자기한 순애물 좋아하시는 분들껜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비주얼 노벨 치고는 플레이 시간이 짧은 것이 단점일 수도 있지만 주인장에겐 군더더기 없이 짧게 마무리되는 스토리가 오히려 마음에 들더군요.
대전마작 넷으로 론!
2001년 12월 20일에 아리카에서 발매한 대전마작 넷으로 론!(対局麻雀 ネットでロン!)은 PS2용 마작 게임입니다. 스토리 모드가 따로 있다는 것과 네트워크 대전이 가능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 특이점이 없는 콘솔용 마작입니다. 2:2 팀배틀이 가능한 것이 색다르긴 하네요. (네트워크 기능이 국내에선 무용지물이라 스토리 모드밖에는 못해봤습니다. 재미는 없어요.) 스치파이 시리즈에서와 같은 사기 기술이 없어 순수하게 실력(?)으로 승부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웠던 물건.
엠 MxS 에스
2003년 5월 29일에 아보파에서 발매한 엠 MxS 에스(エム MxS エス)는 적자에 시달리는 SM 클럽 Combat de Reines를 살리기 위한 주인공의 분투기를 그린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거 진짜 경영 게임입니다.)으로 플레이해 보시면 SM을 소재로 이렇게 밝고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제작사의 능력에 감탄하게 될 겁니다. 명목상으론 SM 클럽을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클럽에 있는 미소녀들과의 연애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코믹물로 원화나 캐릭터성, 게임 시스템 등 어느 한 부분도 소흘히 하지 않고 잘 다듬어 놓은 제작사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당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을텐데) 추천작이니 SM에 거부감있는 분들도 꼭 즐겨보세요. 이 게임, 채찍이나 양초 많이 안나옵니다. 참고로 진짜 하드한 SM 게임 플레이하고 싶으시면 같은 제작사의 2002년작 PIGEON BLOOD를 추천합니다.
라이어 대전 쟈마게돈
2003년 12월 12일에 발매된 라이어 대전 쟈마게돈(ライアー大戦じゃんまげどん)은 아보파 퇴사 후 원화가의 첫 작품으로 회사가 망했어도 계속 에로게 일을 하는구나라고 안심했는데 결국은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라이어소프트의 버라이어티 마작 게임으로 코이케 사다지 말고도 6명의 원화가가 캐릭터를 나누어 그렸습니다. 코이케 사다지는 주인공을 게임 세계로 부르는 소녀 피아나와 주인공의 여동생 우에다 마나미의 캐릭터 디자인과 원화를 맡았습니다. 게임은 전체적으로 평범한 인상의 탈의 마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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