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엘프를 빛냈던 원화가들
엘프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원화가들을 소개합니다.
에로게 제작사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주인장은 엘프(エルフ)와 아리스소프트(アリスソフ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물론 '과거에' 양질의 순애물을 꾸준히 발표했던 F&C, 에로게 제작사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리프와 키, 타입문도 있지만 매출 규모나 작품 수준을 떠나 에로게 시장의 트랜드를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회사는 이 둘이 유일할 것 같네요.
이 두 회사 작품들은 단순 비교가 무리일 정도로 개성이 뚜렸하지만 주인장의 관심 분야인 게임 원화 부분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먼저 아리스소프트의 모든 원화가는 회사 소속이고 일부 동인 활동을 제외하고는 자사 게임 제작에만 참여합니다. (직원이니 당연하겠죠.) 우리가 잘 아는 MIN-NARAKEN, 오니기리군(おにぎりくん), ORION과 같은 원화가의 그림은 오직 아리스소프트 작품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엘프는 회사 설립 초기를 제외하고는 전속 원화가가 없습니다. 그래픽팀은 내부에 있는데 새로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항상 게임 분위기에 맞는 원화가를 섭외해 외주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섭외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업계에서 톱클래스에 위치한, 엘프나 되니 이정도 인물을 데려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유명인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엘프 신작이 발표되면 게임성을 떠나 이번엔 누가 원화를 맡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록 보존 차원에서 엘프를 빛냈던 외주 원화가들이 누구누구였는지 조사해 보았습니다. 직원이었다가 퇴사한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외주 스텝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었는데 공통점은 현재 대부분의 스탭이 각 분야에서 한가닥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화가 이야기처럼 게임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니 간단하게 경력만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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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루 토시히로
아비루 토시히로(阿比留壽浩)는 1990년에 발매된 DE.JA와 1992년에 발매된 DE.JA2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이 두 게임은 2004년에 합본 형식으로 리메이크되었습니다.) 이름만으론 누군가 하시겠지만 히루타 마사토(蛭田昌人; 동급생 시리즈 등의 시나리오 라이터이자 전 대표이사)과 함께 엘프를 만든 창립 맴버였고 1993년 퇴사 후 밍크(대표작은 야근병동 시리즈)를 만들어 현재까지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에로게 시장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크리에이터 중 하나입니다. 2003년에 발매된 잔뜩 해요(いっぱいしましょ)를 마지막으로 원화일에서 손을 떼고 지금은 회사 운영과 게임 프로듀싱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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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야스치카
나가오카 야스치카(長岡康史)는 초대 도라에몽 원화부터 시작해 육신합체 갓마즈, 루팡3세 등 굵직한 고전작에 많이 참여했던 유명 애니메이터로 경력을 통털어 게임 원화는 딱 한 번 맡았습니다. 어드벤쳐 게임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명작 이 세상 끝에서 사랑을 노래한 소녀 유노(この世の果てで恋を唄う少女YU-NO)의 원화가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요즘은 게임 일은 접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더군요. 최근 작품으로는 성계의 문장 시리즈와 신혼합체 고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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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타 마모루
요코타 마모루(横田守)는 자매 브랜드 실키즈에서 카와라자키 가문의 일족(河原崎家の一族)과 노노무라 병원 사람들(野々村病院の人々)을, 엘프에서는 유작(遺作)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현재는 에로게 제작사 테리오스 대표를 맡고 있지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잘 나갔지만 퀄리티 떨어지는 게임 양산과 성의 없는 원화, 회사 공금을 횡령했다는 악성 루머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2009년부터 활동을 잠정 중단한 후 몇년 동안 잠수했다 2015년에 복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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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이 마사키
타케이 마사키(竹井正樹)는 엘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동급생(同級生) 시리즈와 드래곤 나이트4(ドラゴンナイト4)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원래는 매드하우스에서 요수도시와 로도스섬전기 원화를 맡았던 실력파 애니메이터로 로도스 섬 전기 OVA를 마지막으로 게임 업계에 흥미를 느껴 고전 육성 시뮬레이션 명작인 졸업, 데뷰의 원화를 맡았고 이후 에로게 시장으로 진출해 업계 트랜드를 바꾼 동급생 시리즈 원화를 맡았습니다. 여기서 자신감이 붙었는지 ZEUS라는 개발사를 설립해 독립했고, Jupiter라는 독자 브랜드를 만들어 게임을 발표했지만 쫄딱 망해 2001년에 친정인 실키즈로 복귀했습니다. 현재는 프리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간간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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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도이 아야
카도이 아야(門井亜矢)는 엘프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하급생(下級生) 시리즈와 마지막 불꽃이었던 가텐계(ガテン系)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1971년생의 유부녀 만화가로 여고생을 소재로 한 코믹물을 간간히 연재하고 있습니다. 90년대 후반 세라문과 하급생 동인지로 코미케를 주름잡았다고 하던데 성의 없는 출판물로 변두리 부스로 밀려난 후 2010년 이후로는 동인쪽으로는 개점 휴업 상태입니다. 어째 타케이 마사키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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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세 마유
내일의 유키노조(あしたの雪乃丞) 시리즈 원화를 담당했던 나가세 마유(ながせ まゆ)는 그림체 보시면 알겠지만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나나세 아오이(七瀬葵)입니다. 나코루루 광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2004년 동인 활동을 잠정 중단할 때까지 여제라는 칭호와 함께 인기 동인 서클 POWER GRADATION을 이끌었습니다. (동인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는 루머가 몇 년째 돌았는데 아직은 조용하네요.) 요즘은 간간히 만화 연재를 하면서 소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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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베 히데로
호리베 히데로(堀部秀郎)는 유작을 제외한 이토 집안(伊頭家) 시리즈 나머지 작품들(臭作, 鬼作)의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1993년부터 2006년까지 자그만치 13년동안 에로게 잡지 PC-Angel 표지를 그린 일러스트레이터로 2006년 6월 급성심부전증으로 갑자기 쓰러져 3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입니다. 에로게 뿐만 아니라 인터루드(インタールード) 같은 일반 어드벤쳐 게임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원화가였는데 정말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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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신
린신(りんしん)은 워즈워스(WORDS WORTH) 리메이크판과 카와라자키 가문의 일족2(河原崎家の一族2)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워즈워스, 카이트, 메조포르테와 같은 걸작 18금 OVA 원화를 담당한 애니메이터로 본명이나 성별, 나이 등의 개인사가 일체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라고 합니다. (유명 작가가 성인물을 하고 싶어 정체를 숨기고 활동했다는 썰도 있더군요. 진실은 저 너머에) 일기당천이나 퀸즈 블레이드와 같은 일반(?) 애니 작화도 맡아 양지에서도 많이 알려진 애니메이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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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마유미
와타나베 마유미(渡辺真由美)는 여성 애니메이터로 1999년에 리메이크된 연희(恋姫 ~K・O・I・H・I・M・E~)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같은 이름의 18금 OVA 작화 감독을 맡았으며 린신과 같이 메조포르테 원화 작업까지 했더군요. 이 작가는 원래 오렌지로드나 웨딩피치, HAPPY LESSON과 같은 미소녀 애니 작화 감독 출신입니다. 요즘은 라이트노벨이 원작인 TVA 작업에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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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이 마사키
카와이 마사키(川合正起)는 1991년에 발매된 ELLE의 리메이크작 el 원화를 담당한 일러스트레이터로 2006년에는 고전 명작 바리스와 ARCUS의 어줍잖은 18금 리메이크판 원화를 맡는 바람에 본이 아니게 욕을 먹었습니다. 여성향 에로게 원화도 몇 편 담당한 적이 있으며 아내인 카와이 사보(川合佐保; BL 게임 브랜드 SandalDash에서 주로 활동)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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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나오키
혼다 나오키(本田直樹)는 아카호리 사토루(あかほりさとる)가 시나리오를 써 화제가 됐던 라임색 전기담(らいむいろ戦奇譚) 시리즈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한때 코이케 사다지(小池定路; 지금은 만화가로 활동 중)와 같이 주인장이 좋아했던 브랜드 아보가도 파워즈(アボガドパワーズ)에 소속되어 있던 원화가(대표작: D+VINE[LUV])라 더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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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메다 코반
성인 만화가로 더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메다 코반(さめだ小判)은 엘프에서 신 미카구라 소녀탐정단(新・御神楽少女探偵団)과 AV킹(AVキング) 원화를 담당했고 자매 브랜드인 실키즈에선 시체를 닦다(肢体を洗う), 애자매3(愛姉妹 ~どっちにするの!!~) 원화를 맡았습니다. 요즘은 콘솔 게임 시장으로도 작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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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 나오
타지마 나오(田島直)는 칸노 히로유키(菅野ひろゆき)의 걸작 이브 버스트 에러(EVE burst error)와 데자이아(DESIRE 背徳の螺旋)의 원화가로 실키즈의 1996년작 BE-YOND 원화를 맡았습니다. 이 게임은 2000년에 모기업인 엘프가 리메이크했고 여기에도 원화가로 참여했습니다. 2003년 이후 너무 다작을 하는 바람에 그림체가 많이 망가졌는데 그나마 2005년 이후로는 작업량까지 줄어 아쉬운 작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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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카와 사아샤
이치카와 사아샤(市川小紗)는 1999년 코코로(コ・コ・ロ…)라는 충격적인 작품으로 에로게 시장에 데뷰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로 이전에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자매 브랜드 실키즈에서 여계가족(女系家族) 시리즈 원화를 그려 호평을 받았고 시나리오 라이터 도텐 메이카이(土天冥海)와 함께 미육의 향기(媚肉の香り ネトリネトラレヤリヤラレ; 2008년)와 인간 쓰레기(人間デブリ コンナジブンニダレガシタ?; 2010년)를 차례대로 내놓아 꺼져가는 엘프의 불씨를 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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