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렘 레이서 사랑의 레귤레이션은 미룰 수 없어
1999년 10월 22일에 발매된 JAM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영상
감상
공략 대상에 미소녀 레이서나 레이싱 걸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는 많아도 레이싱 자체가 소재인 에로게는 별로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자동차를 직접 조작해야 하는 레이싱 장면 때문이겠죠. 복잡한 연산과 세밀한 그래픽 연출이 필수적이므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콘솔 제작사도 도전하기 힘든 장르에 영세한 에로게 회사가 굳이 뛰어들 이유는 없을 겁니다.
그렇긴해도 레이싱 관련 에로게가 아예 없는건 아닙니다. 주인장이 알고 있는 작품으로는 일루전의 완간 드림(湾岸DREAM), TOP의 모에로 다운힐 나이트(萌えろダウンヒルナイト) 시리즈, AINOS의 깜박깜박 서킷(ぱちぱちサーキット; 방구차 수준이긴 하지만), 그리고 지금부터 소개할 JAM의 하렘 레이서 사랑의 레귤레이션은 미룰 수 없어(Harem Racer 恋のレギュレーション待ったなし)가 있습니다. (다른 레이싱 에로게가 더 있으면 덧글로 알려주세요.) 레이싱 게임에 관심이 많은 관계로 이 포스팅을 시작으로 관련 소재의 에로게는 모두 소개해 보겠습니다.
하렘 레이서는 STONEHEADS의 산하 브랜드 JAM이 1999년 10월 22일에 발매한 레이싱 SLG로 원화가 이야기 초기에 소개한 키리야마 타이치(キリヤマ太一)가 캐릭터 디자인과 원화를 담당했습니다. 레이싱이 소재이긴 하지만 자동차를 직접 조작하는 게임이 아닌지라 그래픽은 전적으로 키리야마 타이치의 그림체에 의존하는데, 요즘과 같이 세련된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름 담백한(?) 맛이 있어 지금 봐도 별로 구리지 않습니다. (주인장은 오히려 이때의 그림체를 더 좋아합니다.)
게임을 실행하면 흥겨운 음악과 함께 히로인들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오프닝(위 영상)이 나오는데 연출이나 색감, 움직임이 상당한 수준이라 게임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 줍니다. 여기에 섹시한 타이틀 화면이 뒤를 이어 '오, 간만에 쓸만한 물건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죠. 게임의 첫인상만 놓고 보고 주인장이 지금껏 플레이했던 에로게 중 톱클래스였습니다.
게임을 새로 시작하는 New Race 메뉴를 선택하면 주인공 이름을 선택하는 화면이 나옵니다. 원하는 이름을 고르고 게임에 들어가면 게임의 배경을 설명하는 간단한 브리핑이 시작되는데, 같이 레이싱을 펼칠 동료와 팀 오너, 정비 전담 엔지니어 소개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프롤로그가 끝나면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게임 화면에 나오는데...
좀 이상하죠? 화끈한 레이싱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다소 실망할텐데, 이 작품은 레이싱을 소재로 했지만 직접 자동차를 모는 게 아니라 주인공인 레이서를 '육성'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라 그렇습니다. 위 이미지가 바로 레이서를 육성하는 스케쥴 설정 화면입니다. 프린세스 메이커나 두근두근 메모리얼을 접해보신 분들은 금방 익숙해질 시스템으로, 특히 연애 시뮬레이션의 고전 두근두근 메모리얼 시리즈를 많이 벤치마킹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주인공의 일정을 세팅하고, 주말에는 쇼핑과 데이트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주인공의 능력치에 따라 레이싱 걸부터 기자, 여배우 등 다양한 클래스의 미소녀들이 등장하므로 각 캐릭터의 호감도를 잘 관리함과 동시에 데이트 장소나 선물 등 공략에 필요한 여러 가지 변수들도 신경써야 게임을 원할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놓으면 게임이 꽤 어려운 것 같지만 체력이나 레이싱 기술, 매력 등의 능력치 옵션이 많지 않고, 한달에 한 번 있는 레이싱 경기 난이도도 낮기 때문에 초반에 체력을 중심으로 기본적인 능력치만 잘 올려 놓으면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쉽게 넘어옵니다. 난이도가 낮은 게 오히려 아쉬울 지경.
능력치 올라가는 화면은 위와 같은데 SD 캐릭터 배치나 애니메이션 처리가 두근두근 메모리얼 1편과 너무 비슷해 대놓고 베낀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STONEHEADS는 하드한 분위기의 비주얼 노블(학원 소돔, SEEK 시리즈)로 꽤 알려진 회사라 이런 이미테이션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히로인과의 만남이 주로 이루어지는 대화 모드 화면입니다. 시원한 느낌의 스탠딩 CG와 실사풍의 배경이 잘 어울리네요. 이 게임은 주인공 능력치에 따라 등장하는 히로인과 반응이 비교적 정확한 편이라 원하는 공략 대상에 맞게 능력치를 올리면 중간에 대놓고 한눈을 팔지 않는한 무난히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한달에 한 번 있는 레이싱 경기 화면입니다만 플레이어가 개입할 수 있는건 경기 시작 전 레이싱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것도 날씨 예보를 보고 알맞은 선택문을 고르면 능력치가 어느 정도 올라있는 중반 이후부터 쉽게 우승할 수 있어 나중엔 경기 자체가 귀찮아집니다. orz 2D 화면이라도 자동차를 직접 조작하게 했으면 훨씬 재미있었을텐데, 많이 아쉽네요.
이벤트 화면은 위와 같이 깔끔한 편이지만 에로씬이 캐릭터당 하나 정도밖에 안되고 바리에이션도 다양한 편이 아니라 두명 정도만 클리어해도 지겹습니다. 이는 일 단위로 설정하는 육성 모드가 지나치게 길고 이벤트 등장 빈도가 적어 생기는 문제라 육성 파트에서 재미를 못 느끼면 게임을 오래 잡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게임의 소재나 캐릭터들의 개성은 괜찮은 편인데 육성 파트의 엉성함과 이벤트의 빈약함 덕분에 나름의 장점이 잘 살리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키리야마 타이치의 팬이나 신선한 소재를 찾는 분이라면 모르겠지만 육성 게임 본연의 재미를 원하는 에로게이머들은 굳이 잡을 필요가 없는 평작이었습니다. 육성 패턴이 너무 단순해 강렬했던 첫인상과 달리 실제 진행은 많이 지루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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